의룡(醫龍), 남자 노구치
* 스포일러 주의 *
의룡은 흉부심장외과를 배경으로 하는 장편 의학 만화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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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룡은 원작자가 두 명이다. 첫 원작자였던 나가이 아키라가 10권 분량 즈음에 타계한 후, 노카자키 타로가 스토리를 이어갔다. 때문에 그 전후의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후반부에서는 아사다라는 천재에서 포커스가 조금 물러난다. 대신 전체적인 정치 싸움이 내용의 골자를 이루게 된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 후반부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지만, 난 훌륭한 전개와 마무리였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후반부에서 시선을 잡아 끈 것은 노구치 교수였다. 줄곧 최종보스와 같은 악당 역할을 맡던 그.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는 점점 정치에서 소외된다. 밀었던 교수 후보가 자신을 버리고, 심장병까지 얻게 되면서 결국 마지막을 비참하게 홀로 맞는가 싶던 노구치. 그러나 결말 부분까지 그는 그다움을 잃지 않는다.
처음 볼 때도 인상적이었고, 다시 볼 때는 전율이 일었던 장면이 있다. 단행본 18권에서, 노구치는 자신의 정치 생명이 끝나감을 깨닫는다. 정적(政敵)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본다. 그리고 자신에게 되묻는다. "과연 난 건강을 이유로 이 장기판에서 내려올 수 있을까? 누구한테 졌는지도 불확실한 상태로, 암자에서 은거하며 조금 남아있는 영향력에 만족할 수 있을까?" 그리고 결론 짓는다. "그건 더 이상 내가 아니다." 직위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일종의 경지에 도달한 그. 새로운 묘수를 떠올리고는 생각한다. "만약 일본 장기(쇼기)의 왕도 적진에서 승격1할 수 있다면, 뭐라고 뒤에 새길까?2 이 왕은 호락호락하지 않을 걸? 사면초가 속에서 반드시 하늘(天)이 되고 말 테다."
그는 자신의 건강조차 정치의 무기로 삼는다. 목숨을 최우선으로 여기라는 아내의 조언을 듣고도, "그녀의 진심을 받아들인 상태에서도 여전히 나로선 양보할 수 없는 일선이 있다면, 그게 노구치 타케오려니, 하고 납득해줄 것이라 믿어.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는 그런 남자라고."라 말한다. 사람마다 견해 차이가 있을 것 같다. 그를 완결까지도 악역으로서 미워했던 사람도 있겠고,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주변에 피해를 끼치는 인생관이라 비판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난 그의 '남자'3에 반했다. 철저하게 권력을 추구하는 권력욕의 화신. 계획적이고 계산이 빠르며 사방에 적을 만들지만, 아내를 사랑하는 그 모습에 매료되었다.
의룡은 다양한 재미를 가지고 있었다. 아사다를 선두로 한 마술쇼 같은 수술도 재밌었고, 인턴 이주잉의 성장도 흥미로웠다. 일본 의료에 대한 비판 의식과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에서 오는 감동도 재미의 큰 축을 담당했다. 그러나 난 의룡의 남자들의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사다와 마취의 아라세 같은 천재들의 삶. 카토4, 키리시마, 쿠니타치 그리고 노구치의 정치 싸움. 의룡은 마초적 매력을 듬뿍 담은 만화다. 소녀적 감성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소년만화가 가지는 속성인 악과의 혈투나 꿈, 우정 같은 소재는 다소 있으나 결코 향이 짙지 않다. 유치함은 만화이기에 용서할 수 있는 정도를 넘지 않는다. 의룡은 더 없이 확실한 마초 만화다.
나 자신도 남자이기 때문일까, 의룡의 이런 색채가 좋다. 내게 권력욕은 별로 없지만, 그것이 그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은 되지 않는다. 그 순수하고도, 심지어 아름답다고도 표현할 수 있는 욕망. 남자는 단순하다고 했던가? 마초의 삶 또한 그런 것 같다. 복잡하게 꼬여 있고 지저분하고 때론 치졸해보여도 그 뒤는 그렇지 않다. 인생을 관통하는 염원 하나로 청사진을 그리고 살아가는 존재들. 어지럽지만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이런 이야기가 좋다. 그리고 등장인물 중 그 누구보다도 남자였던, 노장 노구치가 좋다.
의룡. 멍하니 삶이 흐릿해질 것 같을 때, 다시금 책장에서 빼어들 책이 하나 또 늘었다.

- 일본 장기에서는 말이 승격하는 것이 가능하다. 승격은 말이 상대 적진에 들어가서 움직일 때 일어난다. 예를 들어, 체스에서의 룩이나 장기의 차와 비슷한 비차(飛車)는 승격하여 용왕(龍王)이 된다. 승격할 경우 가능한 움직임이 많아지고, 따라서 강해지게 된다.
- 승격하면 말을 뒤집는다. 뒤에 승격 시의 이름이 적혀 있다.
- 다소 성차별적인 어휘 선택이 되었다. 이 글에서 계속해서 남자라는 단어를 쓸텐데, 그에 대해 거부감이 들 사람이 있을 것이라 본다. 하지만 달리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난 정통적 성역할이 절대적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아니고, 페미니즘에 혐오감을 가지는 사람도 아니다. 변명을 조금 해보려고 한다. 난 그들의 남성 중심적인 언어를 바꾸려는 시도를 안다. 그리고 그 취지나 목적도 일리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아직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난 열성적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그러므로 아직 죽지 않은 언어의 사회성을, 단지 누군가가 짜증을 낼까봐 두려워 글에서 도려내는 일은 않으려 한다.
- 카토는 물론 여자지만, 여자의 길을 포기했고, 미키를 포함한 다른 여성 조연들은 작품에서 비중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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