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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E(2008), 유추의 아름다움

* 스포일러가 조금 들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

월E를 봤다. 이 사랑스러운 작품을 이제야 봤다. 내가 반한 이유를 일일이 나열하지는 않겠다. 너무 길어질 테니까. 이 글에서는 월E의 스토리나 아트, 작품성을 논할 생각이 없다. 리뷰 카테고리에 넣어놨지만, 작품과 조금 거리가 있는 이야길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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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E에서 관객은 그 무엇보다 인간적인 로봇을 만난다. 월E는 단백질로 이루어지지도 않았고, 밥을 먹지도 않으며, 자라지도 죽지도 않는다. 그런 월E에게서 인간미를 느낀다면, 그것은 외형적인 이유, 물질적인 이유가 아닌 그 이상의 무언가가 인간다움을 결정짓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두 시간도 안되는 짧은 러닝타임 동안, 작은 로봇 이면에 있는 그 인간다움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다움은 많은 창작물에서 말하는 인간의 힘, 아름다움 혹은 희망과 비슷하다. 몇가지 떠올려보자. 영화, 만화 그리고 소설에서, 우리는 인류를 위해 몸을 내던지는 영웅의 숭고한 모습에서, 명예와 영화를 포기하고 사랑을 택하는 로맨티스트의 모습에서, 온갖 부정적인 확률을 애써 무시하고 한 줄기 희망을 잡으려 노력하는 이상주의자의 모습에서 인간다움을 본다.

하지만 환상은 거기까지. 우린 알고 있다. 실제로는 우리가 영웅도, 로맨티스트도, 몽상가도 아니라는 것을. 영화가 끝난 후, 화장실에 들어가 소변을 누고, 거울을 마주하는 순간 깨닫게 되는 것이다. 픽션은 픽션일 뿐. 그대로 그 세계에 빠져서 동경하는 것은 어린이의 몫으로 남겨 놓고, 머리 좀 자란 어른들은 다시 전투 태세를 갖춰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여기서 궁금한 점이 생긴다. 그럼 그것을 정말 인간다움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가? 그런 특별한 사람들이 어떻게 인류를 대표할 수 있단 말인가? 더 나아가서, 과연 그런 주인공들이 보여준 행동이 옳은 것인가? 비현실적인 공상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이 난관에서 답을 찾는 것은 힘들 것이고,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이 말하는 인간다움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해볼 시간 정도는 있을 것 같다.

인류의 역사와 문명을 동경하는 사람은 발전에 대해 말하곤 한다. 인류는 맨손에서 시작해서, 불과 도구를 얻은 후, 바다를 건너고, 하늘을 날고 마침내 지구마저 벗어났다. 단순히 나열해서 되짚기만 해도 이 얼마나 고무적인가. 다음 단계로, 다음 단계로 인류는 쉬지 않고 달렸다. 그 와중에 수많은 동족이 죽어나갔고, 지구는 인간이 살기 힘든 환경으로 변하고 있지만, 아마 인류가 멈출 일은 없을 것이다.

인류의 작은 마음과 사랑을 동경하는 사람은 잊은 것에 대해 말하곤 한다. 문명의 이기는 언제 답이 올까 마음 졸이며 부치던 편지를 빼앗아 갔다. 모든 것이 커지고 조직화된 결과, 거대 기업들의 돈놀이에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있고, 전쟁의 기술은 이제 몇백 킬로미터 밖에서 스위치 한 번 누름으로써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목숨을 거둘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그러나 이것을 걱정하는 이들이 말하는 낭만이란, 많은 사람에게 그저 지친 삶의 휴식처 노릇을 하고 있을 뿐, 실제적으로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인류는 계속 잊어가는 것을 추억하려 노력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인간다움이 뭔지도 잘 모르겠는데, 심지어 몇 가지 떠오르는 것을 늘어놔도 공통점조차 찾기 힘들다. 배신과 질투, 나태를 보통 인간미라고 부르지 않는 것을 보면, 분명 사람들이 인간에게서 보는 아름다움이 뭔가 있을텐데. 개인마다 조금씩 다르긴 해도 어느 정도 두리뭉실한 이상형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영 쉽지 않다.

잠시 말을 돌리자. 월E에서 내게 매우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있었다. 식물을 통해 지구란 존재를 자각한 선장. 그는 컴퓨터에게 끝도 없이 묻는다. 지구란 어떤 곳인가? 바다란 어떤 곳인가? 춤이란 무엇인가? 난생 처음 보는, 낯선 고향의 풍경에 매료되어 선장은 첫번째로 지구로 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마치 베니스의 사진을 보고 그 이국적인 모습에 반해 여행을 마음먹는 사람처럼. 하지만 이브의 메모리를 재생시켜서 본 지구는 상상한 모습과 많이 달랐고, 선장은 그 모습에 실망하게 된다. 그러다 기억 어딘가 남아있는 음악이 이브의 메모리에서 들려오고, 선장은 그 폐허 속에서 살아남은 작은 식물에 놀란다. 그리고 그 식물에게 물을 주다가, 그 약한 모습과 창문 너머 광활한 우주, 지구본을 번갈아보고는 뭔가를 깨닫게 된다. 선장은 그때, 두번째로 마음 먹는다. 우린 지구에 가야해!1

그는 지구와 전혀 관계 없는 삶을 살았고, 이브와 월E가 식물을 가져오기 전까지는 특별난 불만도 없었다. 그러다가 단지 하룻밤만에 지구에 대한 사명감을 느끼고 책임을 다하려고 마음 먹는다. 많은 부분이 함축되어있지만, 굳이 일일이 풀어서 논리적으로 짜맞춰보려 해도 쉽지 않다. 선장은 그 가냘픈 새싹과 지구에 대한 수많은 자료를 보면서 무엇을 알아냈을까? 이 시대를 살지 않은 선장이, 그 부른 배와 짧은 손가락으로 지구의 소중함을 알아챌 수 있었을까? 인간이 이 땅을 얼마나 의욕적으로 파헤쳤으면서도 동시에 필사적으로 지키려고 했는지 고작 지구본을 보며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난 역시 이 부분이 너무 사랑스럽다. 인간이란 이런 것 아닐까? 비록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어도, 사실 모르는 것이 더 많아도, 자신 있게 결정하고 스스로가 믿는 가치에 모든 것을 거는 존재. 다른 사람을 늘 의심하고, 때로는 자신의 마음도 갈피를 못 잡으면서도 계속 사람을 만나며 감정을 확인하는 존재. 만족스럽지 못한 현재의 모습에 괴로워하고 미래에 대해 비관적으로 예측하면서도 내일의 목표를 위해 꿈을 꾸는 존재. 이런 것에서 우린 인간다움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내게 그것을 짧게 정리해보라 말하면, 난 그것을 유추의 아름다움이라 부르고 싶다. 새싹 하나에게 물을 주면서 지구를 상상하고, 태양계를 보면서 원자를 상상하고, 짧은 우연한 만남에서 운명을 상상해낼 수 있는 유추. 만물의 질서를 새로 만들어낼 수 있는 신과는 다르지만, 서로 다른 두 사물에서 같은 면을 보고 다른 면까지 예측해낼 수 있는 힘, 그것을 인간은 가졌다.

알다시피, 유추는 적확한 논리의 결과가 아니다. 그래서 당연히 틀릴 때도 많고, 결과가 맞물릴 때도 많다. 수많은 유추의 결과, 현재 인류는 수많은 가치의 반목을 겪고 있다. 그래도 난 희망을 본다. 월E가 영화를 보면서 손을 마주잡는 것의 따뜻함과 사랑을 유추해내는 모습에서, 그리고 그것을 보고 인간의 따스함을 유추해내는 우리의 모습에서 희망을 본다. 그 가슴 뭉클해짐이 말해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직 그 인간다움이란 스크린 안에서나 존재하는 것이 아닌, 우리가 잃어버리지 않은 우리의 진짜 모습이라는 것을. 틀림없이 월E에게서 인간을 본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서도 똑같은 것을 느낄 수 있을테니까. 그래서 난 괜찮을 것 같다. 아직 인류는 인간다움을 잃지 않았다.

  1. 내 초라한 필력으로는 그 아름다운 장면을 글로 제대로 옮길 수 없어 그저 안타깝다...
2011/12/25 01:16 2011/12/25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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