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탈1, 2 이틀만에 버닝
앞
포탈! 퍼즐, FPS의 신개념을 구축했다는 게임. 반드시 해보리라 벼르고 있었다. 돈 주고 사서 할 계획이었지만, 갑자기 너무 해보고 싶어서 법을 어겼다. 변명할 생각은 없고, 앞으로 나올 밸브 사의 모든 게임을 사서 죄질을 줄여나가고자 한다. 사실은 얼마 전에 게임소프트를 파는 가게에 한 번 들렀는데, 포탈2가 있다면 바로 살 생각이었으나 대체 무슨 운명인지 재고가 바닥나고 없었다.1
내가 접해본 첫 밸브 작품. 하프라이프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내가 원래 FPS에 관심이 별로 없고, FPS에 외계인이 나온다니까 더 흥미가 떨어져서 해보지 않았다. 예외라면 카운터스트라이크를 해본 것인데, PC방에서 레인보우식스의 아류작 정도로 생각하고 친구들과 즐겼던 적이 있다.
물론 작살나게 후회 중이다. 내가 밸브를 이제 접하고도 게이머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난 그냥 찌질한 블리자드 폐인일 뿐이었다.
요즘들어 별로 글쓰기에 의욕이 안 생겨서 오늘도 장문은 안 쓰려고 한다. 그냥 깨작이는 수준으로 쓸 것. …이라고 생각했는데 적다보니 역시나 또 길어지는 것 같다. 퇴고 없이 휘갈기고 저장해야겠다.
포탈
어쩌다가 새벽에 깬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아침 7시라는 시각을 밤 샐 때 빼고는 본 적이 없는지라, 뭘 해야할지 공황상태에 빠졌다. 그러다 생각난 것이 포탈(PORTAL). 불법 다운로드를 받고, 웹툰을 보다보니 8시 경. 플레이를 시작했다.
어디선가 포탈1의 난이도는 애기 장난 수준이며, 능숙한 게이머라면 누구든지 순식간에 적응한다.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난 원래 게이밍 센스가 떨어지는 편이지만, 그 말은 내 자존심에 깊히 박혔다. 하드코어 게이머는 아닐지언정, 난 게임에 내 학점도 성적도 모두 다 갖다 팔았단 말이다. 그 때문에 원래 유유자적하면서 게임을 즐기는 스타일인 내가, 스피디하게 깨기 위해 무진장 노력한 첫 게임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말은 해도 구석구석 낙서 글귀도 다 읽고, 그림도 다 봤으니 사실 즐겼어도 속도에 큰 차이는 나지 않았을 것 같다. 실제로 점심을 먹자마자 엔딩을 봤으니, 반나절이 훨씬 안 걸린 셈이다.
대충 게임의 방식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직접 해본 것과는 달랐다. 구석구석에서 개발자의 배려가 느껴졌다. 떠도는 말처럼 실제로 적응하는데 전혀 힘들지 않았다. 다만 단축키 설정을 미리 봐두었어야 했다. 전설의 삽질을 했기 때문이다.
남들은 들으면 기겁하겠지만, 난 1번 방과 2번 방에서 공을 굴려서 버튼 위에 올려두어 깼다. 'E'키로 들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바보 같은 짓이었지만, 직접 해보면 진짜 욕나온다. 올라갈 듯 하면서도 절대 안 올라간다. 플레이어의 무게와, 앉기와 점프를 적절히 사용해야한다. 그러고보면 앉기(Ctrl)을 할 수 있었으면서 왜 잡을 줄 몰랐는진 나도 스스로가 미스테리하다. 3번 방에 다다를쯤엔 공굴리기의 고수가 되어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E'키를 터득한 후엔 쓸모없는 테크닉이 되었다.2
그랬음에도 몇 시간 만에 엔딩을 본 것을 보면, 확실히 포탈은 컨텐츠 길이 자체는 짧은 게임이다. 하지만 절대 그 부분을 까고 싶지가 않은 것이, 게임 자체가 그냥 매력으로 떡칠되어있어서 그런 사소한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첨부터 자세한 리뷰를 하려던 글이 아니었고, 단순히 클리어했다는 일기를 쓰려던 글이었기에 짤막하게 언급하겠다.
일단 게임이 너무 아름답다. 터렛과 글라도스, 포탈건을 포함한 모든 메카닉의 디자인, 음악과 배경이 적절하게 어우러지는 긴장감 있으면서도 발랄한 분위기, 글라도스의 매력적인 보이스와 노래를 포함한 그 모든 것이 아름답다. 완성도 높은 명인의 작품이란 찬사가 절로 나온다. 게임을 해본 누구나 이 섬뜩하면서도 귀여운 매력적인 게임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것이다. 아, 어디 포탈 같은 여자 없나?
그래픽 수준도 상당하다. 솔직히 이 정도 그래픽이면 이미 모니터 게임으로선 완성 레벨에 이르렀다고 봐도 될 정도. 물론 훨씬 더 좋을 수 있다. 나도 게임을 적게 해보진 않았다. 하지만 어렵고 화려하고 정교한 기술이 들어간 그래픽과, 완성도 높은 그래픽은 다르다. 이건 내 개인적인 게임 그래픽 미학에 관한 이야기이니 더 길게 서술하진 않겠다. 하지만 완성도를 차치하고 그냥 기술만 봐도 충분히 높은 수준의 그래픽인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당연히 최고는 게임성이다. 이 포탈이란 아이디어는, 그 어떤 FPS나 퍼즐 게임과도 다른 새로운 차원의 뭔가를 창조해내는 것을 성공했다. 사용되는 테크닉을 언급하는 건 귀찮을 정도로 많다. 어느 두 공간을 물리적으로 잇는다는 발상이 얼마나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는지 몸소 체험해 보라.
이쯤만 되어도 난 포탈에 대한 사랑에 빠져 허우적댔으련만, 화룡점정은 개발자 코멘터리였다. 엔딩을 본 후엔 모든 스테이지를 개발자의 노트가 달린 버전으로 다시 깰 수 있는데, 각종 비하인드 스토리와 개발 의도를 들을 수 있다. 만약 게임 개발에 꿈이 있다면 밸브 사의 코멘트 달린 버전은 모조리 해볼 것을 추천한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주옥 같다.
그렇게 엔딩을 두번째 본 뒤, 비공식 확장팩인 프렐류드를 하려고 했다. 근데 1번방을 클리어한 후 왠지모를 귀차니즘이 솟구쳤다. 어렵다고 유명하고 공식 게임도 아닌 MOD를 해서 뭐해. 그래서 끄고 포탈 2로 입성했다.
포탈2
포탈1을 두 번(그냥 한 번, 개발자 코멘트 버전으로 한 번) 클리어하고 나니 서너 시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조금 휴식을 취한 뒤에 포탈2로 직행했다. 포탈2에 대해 하도 찬사가 많은지라, 기대를 많이 하고 실행했다. 전작을 뛰어넘는다니, 대체 어떻길래?
그러나 기대는 박살났다. 매우 좋은 쪽으로 말이다. 오프닝이 끝나기도 전에 난 내가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우와, 이건 대체 뭐하는 새로운 게임이지? 멋지다!
내가 전작의 그래픽을 칭찬했던가? 모두 잊어라. 포탈2의 엔딩을 보는 그 순간까지 난 이 황홀한 그래픽을 보며 침을 줄줄 흘려야 했다. 심지어 난 최상옵도 아니었다. FPS 류의 게임에서 지연이 생기는 것을 싫어해서, 처음 시작하자마자 화면 이동이 매우 매끄러울 때까지 옵션을 계속 떨궜다. 그럼에도 내가 본 것은 감히 게임이라 부를 수 없는 화면이었다.
포탈1과 다르게 온갖 비하인드 스토리가 나오며, 새로운 주요 캐릭터 또한 매력이 넘친다. 오프닝은 박력 그 자체에 구석구석 사소한 부분까지 센스가 느껴진다.
무엇보다, 끝나지 않는다! 포탈1의 짧은 플레이시간은 어디로 가고, 가도 가도 또 가도 새로운 것이 나온다. 세련된 스테이지 순서 배치와 분위기 전환, 적절한 전개 덕분에 지루할 틈도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플레이타임이 타 게임에 비해 긴 편은 아니지만, 이제 플레이타임이라는 약점(?)도 도저히 지적할 수 없다.
새로 나오는 아이템들은 모두 기발하며 재미있다.
총 플레이에 하루 반이 걸렸는데, 사실 이게 전부 플레이시간은 아니다. 약속도 있어서 밖에 나갔고, 잠도 잤기 때문에. 잠은 너무너무 지쳐서 어쩔 수 없이 잤고, 약속은 헤어지기 전까지 머릿속에 '포탈하고 싶다'만 공명해대서 미치는 줄 알았다.
남들은 왠지 쉽게 깼을 것 같은 부분에서 여러 번 막혀서 고뇌했다. 스위치를 뻔히 봐놓고 망각해서 스위치 안 누르고 깨보려다가 실패했다. 반발 젤을 사용한 퍼즐이었는데, 별의 별 이상한 방법을 다 동원하면 클리어 직전까지 갈 수 있다. 하지만 못 깼다. 베타테스터 중에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었나 보다.
맵 크기가 정말 장난이 아니다. 스케일이 황홀할 정도로 크다. 플레이하면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대체 몇 번 했는지 모르겠다.
역시 개발자 코멘트버전으로 다시 깰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엔 좀 고민했다. 과연 이걸 다시 깬다면 얼마나 걸릴 것인가? 그러나 안 할 수는 없는 법. 다시 했다. 정확히 재보진 않았지만 세 시간은 꼬박 걸린 것 같다. 거의 안 헤맸는데.
사실 난 한 번 엔딩을 본 게임은 웬만하면 다시 손에 잡지 않는다. 그래서 스타2도 캠페인 업적이 바닥 수준이다. 근데 날 다시 하게 만들다니…
뒤
요리봐도 조리봐도 겜덕후는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게임이다. 게임 자체에 대한 능숙도와 관계없는 이지적인 기쁨을 마음껏 누리게 해준다. 낚시나 쓸데없는 노가다를 배제한, 순수한 재미와 퍼즐의 산물. 더 이상 수식어가 필요하려나?
마지막으로, The cake is a lie.
PS. 일기로 시작해서 리뷰로 끝난 것 같은 건 기분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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