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니악(ENIAC)은 최초의 컴퓨터가 아니다? 앨런 튜링 이야기
최초의 컴퓨터 = 에니악?

(사진:에니악) 과연 에니악(ENIAC)이 최초의 컴퓨터일까?
초등학교 때 워드프로세서 자격증 공부를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중, 고등학교 컴퓨터 교과서에도 꼭 한 번은 언급된다. 최초의 컴퓨터, 애니악(ENIAC). 자격증 문제집에는 에니악(ENIAC)부터 시작해서 에니박이니, 뭐니 자질구레하게 몇개 더 있었던 것 같다. 대체 이런 걸 왜 알아야 해? 굳이 안다면 에니악 하나면 충분하잖아?
라면서 투덜댔던 기억이 선명하다. 지금 되새겨봐도 별로 시험 붙는 데 도움은 안됐던 지식인 것 같다.
이처럼 에니악은 많이들 들어본 토막상식일테지만, 이는 상당히 논란거리가 많다. 당장에 위키백과 에니악 항목을 봐도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보통 에니악이 세계 최초의 컴퓨터라고 알려져 있지만, 전자 컴퓨터로는 아타나소프-베리 컴퓨터가 최초이며, 모든 범주를 포함해서 보면 "안티키테라 메커니즘"이 최초의 컴퓨터이다.
최초의 컴퓨터 논란은 컴퓨터라는 개념이 모호하기에 생겨난다. 전자계산기는 전부 컴퓨터인가? 아니면 전기를 안 쓰는 계산기도 컴퓨터인가? 디지털로 동작해야하는가? 예를 들어, 위의 '아타나소프-베리 컴퓨터'는 1차 방정식을 풀기 위한 계산기였다. 오늘 날 우리가 생각하는 컴퓨터와는 좀 거리가 멀다 할 수 있겠다.

아타나소프-베리 컴퓨터. 단순 선형 방정식을 계산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컴퓨터가 다른 기계와 차별화되고 아름답고 강력한 이유는 프로그래밍에 있다고 본다. 기계 하나의 용도가 몇 가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프로그래머의 역랑이나 창의성에 따라 무수히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는 범용기계. 포토샵부터 스타크래프트2, 주식 홈트레이딩 시스템까지, 그 역량은 무궁무진하다.
그래서 프로그램에 중점을 두고 최초의 컴퓨터를 생각해보고자한다. 그런데 이번에도 에니악은 후보에서 탈락하고 만다. 그보다 2년 전, 비운의 천재, 앨런 튜링의 콜로서스(Colossus)가 이미 있었다.
천재는 불행하다
시대를 초월한 과학자, 앨런 튜링의 업적
앨런 튜링은 현대 컴퓨터의 개념을 만든 과학자다. 문제 풀이를 위한 명확한 가이드라인, 즉 '프로그램'을 기계에게 제공할 때, 과연 어떤 문제를 풀어낼 수 있고, 얼마나 빠른 시간 내에 풀어낼 수 있는가? 튜링은 이 질문에 답하고자 하는 계산이론을 만들어냈다.
또한 추상적인 컴퓨터인 튜링 머신을 고안했으며, 현대의 모든 컴퓨터는 일종의 튜링 머신라고 할 수 있다.1 지금의 이진수 기반 컴퓨터 시대를 머릿속에서 완성하고 주도한 장본인인 것이다.
튜링은 세계2차대전 당시 영국군 소속으로, 당시 악명높던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해냈다. 하지만 과정이 너무 복잡하고 단순 계산이 많아서 사람이 직접 하기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그의 아이디어를 암호 해독에 적용, 콜로서스라는 암호해독기를 만들어낸다. 과거 일주일씩 걸리던 계산을 몇 시간 내에 풀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로써 인류는 컴퓨터 다운 컴퓨터를 처음으로 손에 얻게 된다. 비록 처칠 수상이 이 모든 사항을 기밀에 붙이면서 알려지지 않긴 했지만…2

컴퓨터 과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튜링상'은 튜링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이것도 그의 과학에 대한 공로를 다 적은 것이 아니다. 42년의 불꽃 같은 짧은 삶 동안 이뤄낸 무수한 업적들. 그러나 그는 합당한 대우와는 거리가 먼 생애를 살아야했다. 너무 머리가 좋아서였을까. 어쩌면 천재는 불행하다는 말이 운명처럼 그에게 슬픔을 강요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너무 똑똑했고
튜링은 너무 시대를 앞서갔던 것일까? 그가 연구소에서 자신의 만능 기계(Univeral Machine)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지만 돌아온 답은 쌀쌀맞았다. 기계 하나를 만들어서 온갖 문제를 다 해결한다고? 지금 장난하나?
지금 너무나 당연한 것이 그 시대엔 그렇지 못했다. 이것이 그의 불행 하나.
치사하지 못했으며
튜링은 약지 못했던 것 같다. 과학 천재가 정치까지 잘하라고 하면 무리한 요구일까? 스승이었던 폰 노이만에게 수많은 업적을 빼앗기고 지금까지도 상당수가 폰 노이만에게 공이 돌아가 있다. 현대 컴퓨터는 모두 폰 노이만 아키텍처를 따르고 있는데, 이도 사실 튜링이 고안한 것을 다듬은 것. 폰 노이만 아키텍처란, 저장장치와 제어장치, 산술논리장치를 기반으로 한 컴퓨터 구조를 일컫는다. 이것이 불행 둘.
한편 튜링의 조국 영국과는 별개로 당시 미국에서도 컴퓨터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는데, 단지 폰 노이만이 '보고서 선빵'을 쳐서 공로를 먹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시 성공하려면 우직함보다는 눈치와 꾀가 있어야하는 걸까?
뻔뻔하게 살아갈 줄 몰랐다
당시 영국에서 동성애는 범죄였다. 튜링은 동성애자 혐의로 붙잡힌 후, 화학적 거세인 호르몬 치료(?)를 받는다. 연구를 계속해야했기에 감옥이 아닌 거세를 택했건만, 에스트로겐 주사로 인해 그의 가슴은 여자처럼 커져갔다. 더 이상 괴로움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일까. 결국 생의 마지막을 자살로 마감하고 만다. 자살 방법은 시안화칼륨(일명 청산가리)를 주사한 사과를 베어먹는 것. 애플의 로고도 이를 기려 만들었다는 설이 있지만, 다른 주장도 있어 확실치 않다. 이것이 불행 마지막.

튜링의 죽음을 연상시키는 애플의 로고. 동성애자를 상징하는 무지개색도 튜링을 기려 들어갔다는 설이 있다
이 시대는 그가 남긴 선물
컴퓨터를 창조했고, 실제로 최초로 (프로그램 가능한) 컴퓨터를 구현했으며, 세계2차대전 당시 독일군의 암호를 기적적인 속도로 해독해내 승리에 기여했고, 인공지능에 대한 깊고도 날카로운 고찰을 남겼고, 인공지능의 완성도를 판단하는 테스트(튜링 테스트)를 고안한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 그가 행복하기에는 그는 너무 일찍 태어났던 것일까? 아니면 그가 일찍 태어났기에 우리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일까? IT와 인터넷이 지배하는 21세기가 한 천재의 비극을 딛고 피어났다는 사실이 슬프면서도 그에게 경의를 표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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