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신 - 좌절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일 년 판타지' 속 진실과 농담을 가려보자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것이 더 힘든 세상이 되었다. 24시간 정신줄을 탄탄히 붙잡고 눈을 부릅뜨지 않으면 아무 것도 제대로 알 수 없다. 다시 말하면, 누구도 모든 것을 제대로 알고 있지 않다. 농담처럼 던져지는 진실과 진실처럼 일컬어지는 농담을 골라낼 능력이 없으면 대충이라도 알기 힘들다. 물론 세상의 온갖 것들이 다 그렇지만, 오늘은 내가 몇 편 보지도 않은 공부의 신이란 드라마에 대해 몇마디 해보겠다. 요즘들어 환경상의 이유로 수험생의 입장에서 많이 고민해봤기 때문에.
'공부의 신'은 드라마다. 만화 원작이든 뭐든 일단 가공의 이야기다. 천하대 특별반은 존재하지 않으며, 심지어 천하대라는 학교도 없다.1 드라마는 시청률 높으면 장땡이고 공부의 신은 그럭저럭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에서 끝나면 다행인 일이다. 그러나 수많은 수험생들과 대한민국의 불행한 청소년들은 이미 심적으로 너무 약해져있다. 미세한 희망이라도 보이면 붙잡고 싶고, 자신보다 조금만 잘났다 싶으면 헐뜯는다. 그래서 지금은 그 상황을 벗어난, 그러나 그리 오래되지 않은 내 시선으로 공부의 신에 나오는 각종 사실(?)들을 판단해보겠다.
부분적 사실
우선 가능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지금껏 공부를 완전 놓았던 성적 하위 그룹이 일 년 동안 미친 듯이 공부를 해서 천하대2에 입학한다.'-이건 충분히 가능하다. 많은 수험생들의 비웃음이 여기까지 들린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도 결론은 같다. 천하대에 입학한 후에 적응을 잘 할 수 있을까는 부정적이지만 일단 입학만이라면 문제 없다.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첫번째로 일 년은 매우 긴 시간이기 때문이며, 둘째로 혼자서 이뤄내지 않기 때문이다.
일 년을 우습게 여기면 안 된다
모두가 흔히 착각하고 우습게 여기는 것과 다르게, 일 년은 어마어마하게 긴 시간이다. 몇 달이란 시간 동안에도 수많은 사건이 일어나고 모두를 흥분시켰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그라진다. 하루에 스스로 생산적이었다고 생각하는 시간과 그렇지 않은 시간들을 분류해보라. 생산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었더라도 집중하지 않았던 시간은 빼야한다. 계획성이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면야, 많은 사람들은 하루 전체를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소비하지는 않는다.
영어 단어 다섯 개를 철자와 뜻만 외우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가? 정말 영어에 익숙하지 않다고 가정하고, 넉넉잡아 30분이 넘을 리가 없다.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에 걸어가면서 다섯 단어, 점심 먹고 남는 시간에 다섯 단어, 자기 직전에 다섯 단어만 외운다고 치자. 이렇게 일 년이 지난 뒤, 얼마나 큰 변화가 일어났을지 조금은 감이 오는가? 하루에 열 다섯 단어니까, 일 년이면 오천 단어에 육박한다. 물론 외운 단어의 반이 넘게 잊어버렸겠지만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단어장 하나도 부지런히 다 넘겨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또는 해본 사람이라면 더욱 그 차이를 잘 알 것이라 본다.
하지만 하루에 한 시간 반3 더 투자하는 것이 전력으로 공부하는 것이라 보는가? 그럴 리가 없다. 하루에 넉넉잡아 여덟 시간4을 잔다고 가정해도 남는 시간이 열네 시간, 한 시간 반을 빼면 열둘 하고도 삼십 분이다. 기적이 일어나는 데 충분하다. 씻고 먹는 시간 및 조금씩 쉬는 시간 다 합해 세 시간, 운동을 두 시간 잡자. 그리고 아홉 시간을 공부에 붓는다. 결과를 장담한다. 대한민국 그 어떤 수험생보다도 건강하고, 탁월한 성적으로 고등학교 생활을 마칠 수 있을 것이다. 천하대는 그에 따라오는 부수적인 포상일 뿐이다.
한 명이서 해낼 수 있다는 게 아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포인트는 홀로 이뤄내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그냥 그럭저럭 학교 수업을 따라가다가 일 년 불태우는 상황이 아니다. 근의 공식을 알기는 커녕 들어보기나 했을런지 의문이고, 역설이란 단어는 그저 한국에 살다보니 한 번쯤 들어본 것도 같은 말일 것이다. 그 상황에서 자신에게 맞는 공부방법을 찾거나 수험 정보를 찾고, 진로에 대해 고민할 여유따윈 조금도 없다.
필요한 것은 완벽한 팀플레이다. 적절한 분업을 한 뒤, 시키는대로 머리에 쑤셔넣는 기계를 전력으로 도와줘야 한다. 일말의 선택권조차 넘겨주면 안 된다. 결론 하나를 도출해낸 뒤, 이것만 하면 된다고 스케줄에 따라 돌릴 뿐이다. 단시간에 교육과정을 따라잡을 24시간 계획표와, 학생의 머리가 도중에 폭발하지 않도록 적절히 조정된 개인형 맞춤 플래너가 필요하다. 뛰어난 선생님 또한 필요함은 애써 말할 것도 없다. 깔끔한 가이드라인이 있을 때, 그렇지 않을 때보다 얼마나 효율이 차이가 나는지는 좀 적게 살았어도 충분히 이해할 것이라 본다.
현실과 다른 것
그러나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평범한 인간에게 하루를 온전히 한가지 일을 위해 투자하는 건 사흘도 힘들다. 아니, 이틀이라도 가면 다행이다. 정말 큰 외적 충격이 있어서 영혼을 불태울지라도 한 달을 채 안 간다. 지금까지 별 생각 없이 살다가 갑자기 한 달씩 세상의 모든 것과 연을 끊고 한 가지에 몰두할 수 있다면, 그렇게 편하게 살 수 있다면 누구나 천재 소리 들었을 것이다. 그게 안 되니까 아인슈타인이 못 되는 것이다. 밥 먹고 자는 것조차 잊고 무엇인가에 미쳐본 기억5, 보통 다 합해 일주일이면 정말 많은 축에 든다.
또, 그와는 별개로 인간의 본성이 도저히 가만히 냅두질 않는다. 인간은 의심하고야 만다. 잘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오히려 더 의심한다. 강압적으로 내려오는 지시사항이 과연 효과적인지, 지금까지 알던 사실과의 괴리감에 회의감을 가지게 되기 마련이다. 스케줄이 너무 살인적이라 자신이 버틸까 의문이 들면 그것도 문제고, 너무 헐거워 보이면 이래서 다 해낼 수 있을까 걱정된다. 하지만 말했 듯이 이런 걸 조율할 틈 따위 없다. 그냥 달리기도 모자를 판에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달성해낼 목표가 아니란 말이다.
눈을 돌릴 여유따윈 없다. 일 년은 물론 긴 시간이지만, 12년 동안 학교에서 가르친 양 또한 결코 적지 않다. 초등학교를 입학할 당시에 구구단조차 몰랐던6 자신을 한 번 뒤돌아보라. 그리고 고작 육 년 만에 어떻게 변했는지 떠올려보라. 지금 다시 열거해보면 배운 양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이미 배운 사람의 입장에서다. 받아들이는 능력이 뛰어나다면 또 모른다. 그러나 학습 능력이 뛰어났었다면, 공부를 했는지와는 별개로 성적이 바닥은 안 쳤을 터다. 그리고 눈을 돌리지 않는 건 인간에겐 당연히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는 거다.
각종 공부 스킬들
그리고 세세한 지침에 신경쓰지 마라. 공부의 신에 나오는 각종 세칙들은 학원가에 돌던 노하우를 대충 짜집기한 것에 불과하다. 그럴 듯 해야하긴 하지만 꼭 옳을 필요는 없다. 드라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인공들과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상황이 다르다. 온전히 받아들일 것들이 아니다. 오답노트를 만드는 게 나은지, 안 만드는 게 나은지는 의견이 분분한 문제다. 스스로에게 어느 쪽이 효율이 좋았다고 해서 드라마를 깔 일이 아니란 소리다.
개인 성격차는 존재하고, 성향차나 학습 능력 차이도 분명히 있다. 일괄적인 방법으로 될 리가 없다. 나 같은 경우는 한 달, 일주일, 하루 단위로 할 일을 짜놓으면 스스로 질려버려서 다 때려치고야 만다. 처음에는 보람을 느끼다가 하루만 엇나가기 시작하면 염증이 나서 짜증이 끓어오른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분명 계획을 짜지 않기만 해도 불안해서 견디기 힘들 것이다. 모든 수험생에게 해당되는 지침 따윈 몇 개 없다. 그리고 그것들은 대체로 추상적이고 기본적이라 실제적 공부법과는 큰 상관이 없기 마련이다.
공부의 신은 없다 하지만 신이 될 이유도 없다
비록 너희가 드라마는 될 수 없지만,
슬슬 정리가 될 것이라 본다. 그렇다. 난 이 드라마가 인간이라면 가능할 리가 없는 판타지라 말하고 있다. 연애질 다 하고, 맘껏 방황하며 해낼 일이 아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수험생을 위해 각종 교육 전문가가 떼거지로 붙어서 도와줄 수도 없고, 그렇게 해주길 바라는 수험생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판타지를 마음의 위안삼아 말하지 않길 바란다. 특히 각종 만화에 종종 묘사되는 고2까지 놀다가 고3 수험 생활을 불태워 좋은 대학교에 간다는 이야기는 결코 사실이 아니다. 가능했던 시절이 있었을런지는 몰라도 지금은 아니다. 게다가 자신이 천재라고 믿고 싶은 거지 정말 천재는 아니라는 걸, 솔직히 다들 알고 있잖은가?
전력으로 노력해보길
그러나 최소한 이런 교훈은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 년을 때려 부으면, 뭐라도 변하고야 만다. 비록 다른 부분이 부족하여 천하대보단 미흡한 결과를 낳더라도. 육체적 정신적으로 성인에 가까워지는 시기에 전심전력으로 무언가를 향해 부딪쳐보는 것은 정말 의미있는 일이다. 최선을 다한 후에 오는 좌절과,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 오는 후회의 무게는 저울질 할 가치도 없다. 그 좌절이 앞으로 인생에서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중요한 버팀목이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잘 몰랐던 소중함들을 알아가길
그래도 기계는 되지 않길 바란다. 인간이 기계가 될 필요는 어디에도 없다. 앞으로 지낼 시간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만큼이나 지금 보내는 시간 또한 소중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결과가 조금 틀리면 또 어떤가? 사소한 일에 고민하고, 복잡한 현실에서 균형을 잃어보고 때론 도망쳐도 봐야한다. 미래라고 해서 먼 훗날의 그 언젠가가 아니다. 결국 자신이 살아갈 시간이다. 지금 행복을 짖누르는 법만 몸에 새겼던 인간이, 원하던 그 날이 왔다고 해서 과연 얼마나 삶을 기쁨으로 채울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세상에는 위를 올려다보는 것만큼이나 가치 있는 일이 수도 없이 많다는 사실을 배워야한다. 학생이란 그것을 깨우치기 위해 지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진심으로 바란다.
살아가며 가치관은 변하기 마련이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다고 여겼던 것도, 어느 순간 하찮게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난 날이 어리석었다고 말하지 않길 바란다. 지금 비록 인공위성을 띄우고 비행기로 하늘을 맘껏 날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한 병사가 근 42km를 달려 전한 승전보의 빛이 바래진 않는다. 지금 마음 속을 휘젖는 고민들 때문에 조금 고통스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그 망설임들이 모여 추억이 되고 내일의 힘이 되고야 만다.
말했듯, 일 년은 긴 시간이다. 긴만큼이나 많은 것으로 채울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인간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대학만을 보고 달려서, 이룰 수 있는가 어떤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정말 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해보라. 그러다 다른 일에 흔들려도 보고, 정말 이게 가치가 있는 일인지 의문도 품어 보라. 성공한다면 온 마음을 다해 기뻐하고, 실패한다면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좌절해보라. 그렇게 좀 더 시간이 흐른 뒤에, 고등학교 시절을 미소지으며 회상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지 않을까.

- 일본 원작에서는 도쿄대라는 대학 이름을 그냥 썼지만 아무래도 상관 없다.
- 천하대란 말은 상위권 대학을 상징한다. 굳이 서울대가 아니라도 무방하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천하대란 표현을 계속 쓰겠다.
- 사실 이만큼조차 들 리가 없다.
- 적게 잔다고 해도 여섯 시간 정도다. 체질 상으로 완전히 익숙해졌고, 건강하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으면서 이보다 덜 자는 건 정말 어리석은 짓이다. 많은 학생들이 너무 안 자서 오히려 잠에 취해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정말 슬프다.
- 일정 이상 집중력을 계속적으로 요하는 일에 한정한다. 하는 와중에도 중간중간 멍때리는 일이 잦은 게임 같은 걸 말하는 게 아니다.
- 구구단을 했다면 그게 문제다. 최근에 어디선가 이른 구구단 교육이 애들을 망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고, 상당 부분 동의한다. 그거 빨리 외워서 뭐가 좋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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