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파(ヱヴァ:破) 다음 편 'Q'가 두렵다

아무 생각 없이 웹을 누비고 있었다. 그리고 익숙한 한 단어에 잠시 눈동자의 움직임을 멈추었다. 1920X1080나 되는 폭발적인 화질의 DVD Rip버전(으로 추정) 링크가 있었다.1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청소년기를 보내던 내 정신세계에 큰 타격을 줬던 존재. 그렇게 에반게리온(エヴァンゲリオン)2과 다시 만났다.
에바:서(ヱヴァ:序)는 정말 서(序)였다. 아직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거다. 그저 말 그대로의 울궈먹기에 지나지 않았다. 과거의 향수가 떠오르고, 화면이 더 멋있어졌고, 카오루가 먼저 나와서 조금 신기하고, 리리스 이야기가 엄청 앞으로 당겨진 것뿐. 이대로 재생산이나 하며 돈이나 벌어먹고 싶은 거겠지-라는 말이 충분히 설득력 있었다.
파(破)는 달랐다. 4부작 중 고작 두 편이 나왔을 뿐인데 이미 옛날 이야기를 다 해치웠다. 서가 조금 전개가 빠른 편이었다면 파는 진정한 광속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 과연 따라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요점만 짚으며 한 번에 세 걸음 씩 뛰어넘었다. 전작의 후반부를 제외한 모든 전개가 끝났다. 그리고 여러가지 암시가 말해준다. 이제부터는 완전히 새로운 것을 보여주겠어.
에바는 엄청나게 강해졌다. 초호기 내의 유이에 대한 언급은 엄청나게 축소되었다. S2기관에 대한 언급은 사라졌으며, 초호기 각성은 유이의 모성본능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신지 본인에 의해서 일어난다. 에바가 강해졌다는 말은 파일럿이 강해졌다는 뜻과 동치다. 특히나 신지는 전작보다 매우 강해졌다. 붉게 빛나는 눈과 함께 자력으로 폭주를 일으키는 모습은 전작과 사뭇 다르다.3
내용은 정말로 박살났다. 중간중간에 서늘할 정도로 느껴진다. 기존 에바 팬들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이번엔 이렇지 않을 거라고. 전작에서 비중있게 다뤄졌던 많은 인상적인 장면들을 일부러 포인트로 잡아줬다가 기대를 부쉈다. 카지는 이제 더 이상 수박과 불길 옆에서 신지에게 어른이 되어주지 않는다.
일반적인 리메이크는 구작 팬에게 친절하다. 그래, 이건 이랬었지.
라든지 와~ 이거 그리운데?
같은 느낌을 받거나 이거 첨 보는 사람 이해하려나? 나야 뭐 다 알아 듣지만.
과 같은 상대적 우월감(?)을 지니게 해준다. 에바:파는 달랐다. 오히려 충격적이다. 구작을 알면 알수록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을 것이다. 예고까지 보고 나니 이제 뭐가 일어날지 예측조차 불가능해졌다.

전작에서 단 한 화 등장했음에도 주요 등장인물로 여겨졌던 카오루. 이번 신극장판에서는 '서'에서부터 짧은 신이지만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직까지도 강한 여운을 남기는 것은 크레딧 후 카오루의 대사다.4 약속의 시간이야. 이카리 신지. 이번에야말로 너만은 행복하게 해주겠어.(さあ、約束の時だ、イカリシンジ君。今度こそ君だけは幸せにしてみせる)
이 대사뿐 아니라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볼 때, 신극장판은 옛시리즈의 다른 결말이 아니라 이어지는 이야기로 보인다. 충분히 순환이 가능한 엔딩5을 End of Eva6에서 보여주었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다.
앞으로의 전개를 매우 흥미를 가지고 살펴볼 일이다. 신극장판에 대해서 논란이 좀 있는 것 같은데 당연한 수순에 불과하다. 신극장판을 까는 사람이든 옹호하는 사람이든 아니면 나처럼 남의 리뷰에 별로 관심 없는 사람이든 인정해야 할 것이 있다. 앞으로 무엇이 어떻게 되어 나오더라도 우린 끝까지 보게 되고야 말리라. 이미 옛저녁에 안노 감독7에게 영혼을 빼앗긴 자들 아니었던가.
* 남은 이야기 :
일본어 어투는 감안해주길 바란다. 내가 원래 이렇다. 일본어로 된 뭔가를 몇 시간 이상 감상하고 나면 머리 일부분이 이상하게 돌아가곤 한다. 문장이 일본어로 먼저 떠올라 번역하는 경우도 잦아진다. 며칠 지나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니 걱정은 안 하셔도 좋다.
스토리 이야기만 잔뜩 적어놨지만, 사실 에바:파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압도적인 액션신이었다. 3D기술의 적절한 사용도 상당히 눈여겨볼 만 했고, 사도 묘사의 세밀함도 뛰어났다. 2D 애니메이션이 보여줄 수 있는 박력의 한계를 가르쳐주겠다는 의지가 느껴졌을 정도.

- 이번 리뷰엔 자잘한 감상을 모두 담지 않겠다. 마찬가지로 자잘한 변명 같은 것도 담지 않는다. 불법 다운로드는 불법 다운로드인 거다.
- 신극장판부터는 ヱヴァンゲリヲン으로 바뀌었다. 현재는 거의 쓰이지 않는 가타카나 두 글자를 바꿔 표기한 것인데, 음의 차이는 없다.
- 덕분에 소년만화적인 묘사(열혈, 우정)가 지나치게 늘었다는 평도 있는 것 같다. 동의한다.
- 에바를 오래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 미사토의 "서비스, 서비스"가 진정한 끝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 신지와 아스카가 아담과 이브가 된다(라고 대체로 해석된다).
- 구 극장판. TV판의 25, 26화를 대체하는 25, 26화를 포함하고 있다.
- 안노 히데아키(庵野秀明). 에반게리온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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