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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밤을 샜어

지금은 아침 일곱 시 이십 분. 잠은 한 숨도 안 잤어. 힘드냐고? 응, 맞어. 그렇긴 해. 근데 이상하게 지금 정신이 좀 말짱해. 호랑이 기운이 쑥쑥 솟아나서 왠지 사흘 정도는 안 잘 수 있을 것만 같아.

아냐, 과장 섞인 거짓말이야. 혈압 부족으로 손가락 끝은 미세하게 저려오고, 눈에는 힘을 줘야하고, 몸 전체에 기력이 돌지 않아. 그나마 정신은 맑아서 기분이 좋을 뿐이지. 그래도 온 몸이 멀쩡하고 머리만 탁할 때보다 이게 훨씬 나은 것 같아. 배는 더 재미있어. 뭔가를 더 할 수 있잖아?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데에는 잘 돌아가고 있는 머리 하나면 준비물로선 완벽해.

순수하게 정말 과제만 하면서 7시간을 넘게 보냈어. 프로그래밍 과제를 제외하면, 아마 장담하건데 처음일 거야. 그 시간의 처음부터 지금까지도 foobar2000에서 그린데이가 앨범 두 장을 통채로 계속 리바이벌해주고 있어. 정적과 차분함에 가라앉아 수면 밑으로 떨어질 내 영혼을 걱정해서 힘을 주고 있는 거지. 응, 그 덕분에 해낼 수 있던 것 같기도 하고.

아직 멀었어. 과제는 이제 겨우 하나 끝났을 뿐이고, 오늘이라고 해봤자 얼마 남지 않았고, 다시 한 주가 시작함과 동시에 과외와 봉사활동도 되풀이 해야해. 그리고 잠시만 정신줄을 놓아버리면 내 시야를 기말고사가 가로막아버리겠지?

맞아, 이 정도는 되어야 해낼 맛이 나지. 가끔 도망치고 싶고, 실제로 그럴까 진지하게 고민하다가도 나만큼이나(어쩌면 나보다도 어쩌면 나보다 덜) 멍청한 녀석에게 매달려 징징대다가 정신을 차려야지. 내 천재적인 예술 감각과 신들린 PPT 제작 실력에 조원 모두를 기절시켜줘야지. 평소에 공부라곤 전혀 안 했'던' 녀석이 갑자기 미쳐서 뒤집어버리는 모습을 보여줘야지.

지난 학기는 적은 것에 충실하기를 시도해봤지만 결국 돌아온 건 나태와 좌절이었지. 그래서 이번 학기는 반대로 스스로를 몰아쳐버리기로 결심했잖아? 벌써 지치면 곤란하다구. 한 학기조차 버티지 못하는 저질 체력으로는 언제까지나 "이런 고삼도 안 해본 나약한 녀석" 같은 소리나 듣게 될 뿐이야.

자, 아직은 좀 더 달려보자.
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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