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ail address rss icon
방문자 오늘 24 전체 161559   admin page link

나 지금 가르치는 거 맞니?

현재 난 대학생이지만 때로는 선생님이기도 하다. 세 사람의 중학생의 과외 선생님이자, 일곱 명의 고등학생의 멘토. 이것 참, 한두 명 만나는 것도 아니니 이 이야기를 얘한테 했던가?하고 학생 몰래 혼란의 도가니에 빠지는 일도 잦아졌다. 처음에는 기억하려고 노력은 했는데, 이거 원 도저히 메모리 한계 안에 쑤셔넣을 수 없어서 웬만큼 중요한 일 아니면 그저 내 즉석 에드립에 기대고 있다.

멘토링의 경우, 1:1이기 때문에 학생마다 대화하는 스타일이 판이하게 달라진다. 누구와는 내가 고등학교 시절 놀았던 이야기나, 수업시간에 잔 이야기를 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며 즐거운 대화를 한다. 또 다른 누구와는 진지하게 현재 목표를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현실적으로 따져보며 조언해준다. 공부만 하는 범생이들이 재수 없다고 입을 모아 뒷담을 해대기도 하다가도 청소년 시절에 모든 걸 바쳐 공부를 전력으로 해보는 것이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말해주기도 한다.

별로 길게 살지는 않았지만 그들보다는 쬐끔 더 밥을 많이 먹었다는 이유로(아니 엄청 더 먹었으려나?) 이것저것 말해줄 수 있다. 상반된 이야기 모두를 생각해본 적 있고, 느껴본 적 있고, 해본 적있기에 살짝 살짝 여러가지 주제를 찔러보며 공감대를 찾아내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한다. 노력하는 것과 성공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당연한 사실도 조심스럽게 언급하고 넘어가야하긴 하겠지만.

그러다보면 내가 이미 배운 것 사이사이에 나조차 사실 성공해본 적 없는 방법들을 많이 일러주곤 한다. 시험 전 이때까지 전과목을 한 번 다 볼 작정으로 요일을 나눠 계획을 짤 것, 시험 전에는 내용의 목차와 중요 내용을 정리할 수 있도록 연습할 것, 시험 대비기간이 아닌 시간들을 더 소중하게 보낼 것, 등등. 성실이란 단어와 일 만 마일은 떨어져 살고 있는 내가 지켜봤을리 없는 것들.

정말로 신기하게도, 다는 아니지만 상당 명이 정말 해내는 모습을 보게 된다. 나라면 당장이라도 책을 찢어버릴 것만 같은 숙제량을 깔끔하게 다 해오는 모습을 보자면 그저 놀랍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고, 내가 알고 있는 많은 방법들은 일반론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나와는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도.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의 일이다. 태만을 안고 매일매일 뒤뚱거리며 겨우 한 걸음씩 살아가는 인간에게 무언가를 '배워내는' 학생들이 있다는 사실. 그것을 깨달을 때마다 점점 작아지는 자신을 지울 수가 없다.

친구들끼리 대화하며 한 명은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하고 있고, 다른 한 명은 들어주고 해결책을 제시한다고 하여 그들이 사제관계가 되지는 않는다. 다른 산의 돌을 보고도 배울 것이 있고, 길바닥의 거지도 선생님이 될 수 있다고 했던가? 난 조금 다르게 생각해본다. 나 이외의 모든 것이 선생님이 될 수 있다는 것은 결국 나 또한 모두의 선생님이 될 수 있다는 말. 그렇다면 결국 선생님이나 학생은 존재하지 않으며, 다들 조금 더 차있는 부분을 건네고 부족한 부분을 받아들이면서 살아간다는 뜻이 아닐까?

내가 학생들에게 배우는 것이 더 많은가, 내가 가르치는 것이 더 많은가하는 저울질이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내게 자격이 있는가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겠다. 내 주제를 따지다가는 언제까지도 남에게 베풀어보지 못한다. 이제부터 보다 다양한 만남을 가지게 해준 기회들에 그저 감사하며, 나누면서 나에게 일어나는 변화들을 기쁘게 받아들여야겠다. 변해간다는 것은 살아있는 것이며, 내일 나를 더 행복하게 할 원동력이 되어줄테니까.

2010/04/17 23:05 2010/04/17 23:05

트랙백 주소 :: http://ruinsane.net/trackback/269

스킨 : Jiha_Blue_breaking ver.0.1

designed by Jiha

powered by textcube ban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