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을까?
내가 지금 있는 곳은 두 명이서 마주 앉아 소주잔을 채우기에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작은 공간.
둘도 셋도 아닌 딱 하나 있는 창문너머 살짝 고개를 내미는 햇살만이,
이 방도 내 속에 잠자는 꿈마냥 넓고 큰 세상의 일부란 걸 겨우 가르쳐 주는 곳.
나란 존재 하나 감당하기 벅차보이는 이 장소에서 시작된 내 이야기는 과연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참 오래도 살았다. 글쎄, 이런 말을 하면 아직도 모유 냄새 풀풀 풍기는 코찔질이가 웬 말이냐?
라고 한 소리 들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리저리 여러 방향으로 머리를 굴려보면 역시 그렇다. 강산이 두 번이나 변했고,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던 핏덩어리가 한 나라 말도 모자라 다른 나라 말 좀 해보겠다고 용쓰는 걸 봐도 그렇다. 보통 수련하러 들어간 주인공이 3 년쯤 지나면 몰라보게 강해져 있곤 하니, 난 이미 최소 여섯 번은 괄목상대할 인간이 되어있었다는 이야기가 되니까.
난 지금 다니는 대학교를 사랑한다. 마구 애정이 끓어올라서 껴안고 싶고 결혼하고 싶다는 건 아니지만, 이 학교에 오게 되어 기쁘다는 생각은 자주 한다. 난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도 사랑한다. 그곳에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에 감사하고 그 좁은 공간에 수없이 새겼던 내 발자욱들을 추억한다. 하지만 중학교와 초등학교까지 내려오면 조금 이야기가 달라진다. 글쎄, 내가 그 두 모교를 사랑하던가?
고등학교와 대학교 그리고 초등학교와 중학교. 그 애정의 격차는 어디서부터 오는 걸까? 두 묶음의 바로 떠오르는 다른 점이라면, 선발집단과 비선발집단의 차이. 대학교와 고등학교는 선발집단이었다. 성적으로 잘라낸 상위 선발집단. 그래서, 내가 그 안에서 느끼던 우월감과 자만, 콧대가 그 둘을 사랑하게 된 이유라고? 아니다. 난 그런 어이 없고 하찮은 이유로 무언가를 사랑한다 말하지 않는다. 사랑의 이유는 사소하고 시시할 수는 있어도 하찮을 수는 없다.
역시 무엇보다 내가 변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어딜 가나 비슷한 사람이 비슷하게 살아간다. 그 속에서 내가 느끼는 게 다르다면, 내가 달랐던 이유일테니까.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과거를 그리 생각하겠지만, 초등학교 그리고 중학교 시절은 나는 참 찌질했다. 고집은 세고 뜻을 꺾는 건 싫어하면서도, 맞서는 것을 더 싫어했기에 틀리다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내가 더 잘났어, 사실 너희들이 틀린 거야 하곤 했다.
세상에 모든 것을 다 알고 있거나 모순 없는 행동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는 것, 나 또한 그 중 하나며 전혀 더 나을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좀 더 시간이 걸렸다. 노력의 가치를 알지 못해 근면함과 무식함의 차이를 제대로 인지하고 있지 못했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나를 되짚어보는 것과 가식적인 가면으로 얼굴을 덮는 것이 뭐가 다른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 내게 학교란 공간과 여러가지 날 압박하던 장치들은 상당한 고통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학원 뺑뺑이에 숨이 막혀 당장이라도 질식해버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지금 내게 쥐여진 무언가를 놓는다는 생각이 두려워 학원을 끊는다는 건 또 싫다고 말하던 나. 싸움을 못했기에 치사하게 입으로 내뱉는 욕설이나 더 늘어났던 나. 지금도 입에서 쉽게 떼지 못해 고생하고 있는 비속어가 무심코 밖으로 새어나올 때마다 느껴지는 게 있다.
그래, 그 무엇보다 난 솔직하지 못했다. 한국어는 햇빛이 잘게 부수어져 호수 위에 남기는 윤슬처럼 잔잔하고 포근한 말만 있는 게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했던 그 무엇도 의미를 전달하는데 육두문자는 필요하지 않았다. 비겁하게 물러서면서 그렇다고 인정하기 싫기에 작은 소리로 들릴 듯 말 듯 씨발이라 중얼거렸다. 없으면 핑계를 만들어 주위가 날 옭아매고 있다고, 그래서 난 지금 여기 있다고 하던 소년이 어떻게 학교를 사랑할 수 있었겠는가.
대체 언제부터 조금씩 솔직해지게 되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원래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의 변화는 알아차리기 어려운 법이니까.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나가던 인생을 철로밖으로 밀어버린 일본 생활 일 년이 확실히 큰 영향이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는 있지만, 일본 생활의 대체 뭐가 변화를 일으켰는가하면 그건 또 알 수 없는 문제다. 난 딱히 기억력이 좋은 편이 아니니 지금 머리를 짖눌러가며 떠올리려고 해보았자 미스테리로 남겠지.
그 이유야 어찌되었든 난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솔직하게 살고 있다. 내 주위에 있는 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아, 그래서 사랑할 수 있나보다. 좋은 점은 좋구나, 나쁜 점은 나쁘구나 할 수 있어야 행복을 느낄 수 있나보다. 교실에 앉아있으면서도 이곳은 내가 있는 곳이 아니야.
같은 소리를 하며 현실의 감각을 다른 세계의 것인양 무시하려 했다간 결국 지나고 나서도 추억거리로 남지 못하나보다.
자랑은 아니지만 청소랑은 좀 거리가 멀어서 여기저기 잡동사니가 굴러다닌다. 이것저것 관심은 또 많아서 방 한 구석에는 기타가 기대고 있고, 다른 구석에는 시즌을 끝내고 다음 겨울을 기다리는 스노우보드가 있다. 내가 이 방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책상 위에는 24 인치 모니터와 시끄럽지만 자랑스러운 내 키보드, 그리고 로지텍 G1 마우스가 있다. 몇 달 동안 켜지도 않은 노트북 하나도 있었지만, 너무 장소를 차지해서 그냥 서랍 안에 넣어버렸다. 싼값에 누가 데려가면 정말 좋을텐데.
책꽂이에는 전공 서적과 책들이 마구 꼽혀있다. 안 모은지 일 년은 된 PC사랑도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스무 장이 좀 넘어가는 음반들과 여러가지를 저장해둔 백업 CD들도 같이 있다. 이 방에는 화장실이 따로 달려있지 않아서 샤워를 하려면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가야하는데, 아침 9시가 다가오면 씻는 사람이 넘쳐나서 기다리다 포기하고 모자를 눌러쓰고 강의실로 달려나가는 일도 종종 생긴다. 미친 듯이 달리면 여기서 강의실까지 3 분 정도면 주파할 수 있지만, 벌써 늙었는지 빠른 걸음을 할 때는 있어도 왜 그리 뛰기는 싫은지 모르겠다. 아우, 또 지각해버렸네. 내 점수 어떡하니.
난 지금 여기 살고 있다. 좁은 곳이다. 하지만 전혀 답답하지 않다. 창문을 열면 하늘이 보이고, 아침에는 햇빛이 들어온다. 문을 열고 신발을 신고 계단을 내려가면, 끝을 짐작할 수도 없는 시야가 펼쳐진다. 이 방은 뭔가 시작하기에 참 좋은 곳이다. 대체 몇년째 가출해서 안 돌아가는지 알 수 없는 비행청소년 지우의 여행도 작은 태초마을에서 꿈을 키우며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보다 중학교 때. 중학교 때보다 고등학교 때 내 주변을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솔직하게 받아들이는만큼 나를 둘러싼 모든 일들에서 행복을 조금씩 더 찾아낼 수 있었다. 그래서 조금은 조심스럽게 추론을 해보고 싶다. 오늘 내가 어제보다 행복하듯이 내일은 오늘보다 그만큼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 아닐까? 이 방에서 시작된 많은 이야기들이 내 생각이 자람과 더불어 밖으로 뻗어나가 보다 큰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이 되어주지 않을까?
난 앞으로도 참 오래 살겠지. 글쎄, 이런 말을 하면 대체 몇살까지 먹을 생각이길래?
라고 한 소리 들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리저리 여러 방향으로 머리를 굴려보면 역시 그렇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도 너무 많은 것이 들어차서 이루 다 헤아리기 힘든데, 앞으로 그 몇배나 되는 기억들이 또 생겨날 테니까. 그만큼 더 행복해지고 그만큼 더 넓게 살게 될 테니까.
- 화산재 팩이라니 (8)2010/04/05
- 어느새 새벽 여섯 시 (1)2010/04/04
-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을까? (13)2010/04/01
- 과외를 구한 것 같습니다 (4)2010/02/21
- 카운트다운 (9)2010/0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