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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에서 연기나는 거 봤냐?

하드에서 연기나는 거 봤냐? 못 봤으면 말을 말어.

어제 오후 부로 내가 갖고 있던 하드디스크 하나가 축!사망 하셨다. 내가 컴퓨터에서 연기난다는 소리를 별의별 이유로 다 들어봤어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건 난생 처음이었다. 하얀 연기가 슈욱슈욱! 하하하하

난 그저 컴퓨터 청소를 하고 싶었어

간만이었다. 아무 일정도 없는데 아침에 깨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1 뭘 할까 하다가 집 이곳저곳을 닦고 먼지도 좀 없애고 했다. 그리고 생각이 미친 한 곳. 아 그래, 이 기회에 컴퓨터나 청소해야지!

팬 소음 해결!

평소에 나의 데스크탑씨는 부팅 시 33.3% 확률로 굉음을 뿜어내셨다. 부우우우웅~~ 지가 무슨 자동차도 아니고 오로바이도 아닌 게 웬 엔진 굉음이여? 그리하야 언젠가는 저 원인을 파헤쳐 바로잡으려는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마침 기회가 온 거다. 아마 이미 먼지가 컴퓨터인지 컴퓨터가 먼지인지 알 수 없는 상태일 것이기에 방충망까지 활짝 열고 작업은 진행되었다.

일단 케이스를 활짝 연 후, 이곳 저곳의 먼지를 빨아들이고 보이는 곳을 좀 닦았다. 그리고 부팅 스위치를 눌러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엔진 소리가 들려왔고 난 소리의 진원지를 귀로 추적했다. 내 황금귀가 진단한 위치는 케이스 후면 팬. 아, 진심으로 안도했다. 그냥 없어져도 컴퓨터 잘만 돌아가는 부품이었다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후면 팬을 분리해 잘 살펴보니 먼지가 많이 묻어있었다. 먼지 때문에 무게 균형이 안 맞아 소리가 나나 싶어서,(가능한가? 쨌든 뭔가 관련 있을 거 같잖아?) 일단 먼지를 열심히 닦았다. 재부팅 해보니 약간의 선풍기스러운 소리는 들려도 굉음은 다시 들리지 않더라. 일단 후면 팬 부활은 성공!

하드 소음 확인! 해결은 내가 할 수 엄꼬…

그 밖에도 컴퓨터 사용 중에 하드 긁는 것 같은 소리가 크게 들리는 경우가 있었다. 이번 기회에 그 원인도 파헤쳐 봐야지. DJ가 레코드판 돌려대는 것 같은 소리가 날 곳은 사실 하드디스크밖에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괜히 다른 원인이 있기를 바라본 거다. 왜냐면 지금 쓰는 640G짜리 하드를 다시 사긴 돈이 아깝거든.

근데 뭐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하드 문제가 맞더라. 아, 이 하드에서 연기 난 거냐고? 여기 윈도7이랑 윈도XP랑 다 깔려 있고, 이게 죽었으면 나 완전 울었을 걸? 근데 지금 멀쩡히 살아서 글을 쓰고 있잖아. 다행히 이건 아니다. 그래도 그 레코드판 소리 덕분에 언제 사망할까 두근거리긴 한다. 더 늦기 전에 백업을 하거나 새로 하드를 사거나 AS를 받아야하는데, 원래 내가 귀차니즘의 노예가 아닌가.

그리고 대망의 주인공 등장

그렇게 청소 겸 점검을 하고 있는데 내 눈에 이상한 게 들어왔다. 어? 하드가 하나 더 꽂혀 있네? 자세히 보니 케이블은 연결이 안 되어 있고. 아, 그거였다. 지난 번에 대구에 내려가서 옛날 컴퓨터에서 가져온 하드였다. 160G짜리 IDE 하드디스크. 연결하려고 하다가 귀찮아서 그냥 케이스에 꽂아만 두고 까먹었던 것 같다.

흐음, 여기 뭐가 들어있으려나? 내 중학생 때 온갖 기억들이 담겨있을텐데… 초등학교 시절 일기장을 벽장에서 찾은마냥 흥분해서 빨리 열어보고 싶어졌다.

1차 시도

케이스에 꽂힌 그대로 IDE 케이블과 전원 케이블을 연결하고 부팅을 시도했다. 오잉? 근데 왜 안 보이지? 장치관리자도 못 잡아내고 하드디스크 목록에도 없었다. 케이블이 제대로 안 꽂힌 모양이다.

일단 전원을 내리고 다시 케이블을 꽂아보려고 했는데, 이거 케이블 꽂는 자세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래서 일단 케이스에서 빼내서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 컴퓨터는 여전히 켜져있는 상태였다.

2차 시도

그리고 케이스에서 빼내2 연결을 해보려고 했다. IDE 케이블을 넣는데 이거 참 죽어라 안 들어간다. 왜 S-ATA2처럼 바뀌었는지 영혼으로 이해가 간다.

IDE 케이블

요게 IDE 케이블이다. 어후 저 두께를 보라. 한 손에 잡기도 골치아프다.

S-ATA2 케이블 사진

이건 S-ATA2 케이블이다. 작다. 쉽게 들어간다. 가늘어서 선 정리도 쉽다.

억지로 쑤셔넣고 아 이제 들어갔구나, 하며 기뻐하고 있는 그 순간!

DAMN!!!

갑자기 풍겨오는 탄내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 왜?! 하드에 전원 케이블도 연결하지 않았는데 어째서 반응이 있는 거지?(여기까지 약 0.5초) 다음 순간, 메인보드의 LED 등이 꺼졌고, 모니터를 바라보자 모니터 역시 꺼졌다! 컴퓨터가 다운된 거다.

당황했지만 바로 전원이 나가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컴퓨터가 리부팅되었다. 그런데 부팅음은 들렸는데 모니터에는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았다.(여기까지 약 4초) 잠깐을 멍 때리다가 그제서야 깨달았다. 내가 지금 뭔 짓을 하고 있는 거야?! 리부팅되는데 왜 그냥 보고 있는 거지? 너무 당황해서 다시 윈도가 켜지면 뭔가 해결될 거라 생각했나?

그리고 광속으로 손을 날려 전원 버튼을 눌렀으나 묵묵부답! 그래서 있는 힘껏 전원선을 뽑아버렸다. 피유우웅 소리와 함께 컴퓨터가 꺼졌고, 메인보드의 LED 등도 몇 초 후에 꺼졌다.

상황 종료 후 고찰

좋아, 일단 상황 종료. 전원이 뽑혔으니 더 악화될 상황은 없다. 삽질이 늘어나기 전에 상황 정리를 해야했다.

문제 파악

무엇보다 먼저 어디가 탔는지를 확인해야했다. 하드 안의 디스크가 탈 리는 없으니까 기판 위의 무언가일 터. 하드디스크는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밑면에 기판이 훤히 보인다. 엄청 쬐끄만 축전기(추정) 하나가 녹아내리고 그 주변 기판이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그 축전기 바로 위 기판에 작게 '+'라고 적혀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전원 관련 기능을 하는 것이라 추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에 한 건 컴퓨터 부팅. 혹시나 하드만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 본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으면 정말 골치아파진다. 간절하게 바라면서 전원 버튼을 누르고… 정상적으로 부팅되는 것을 보며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부팅된 컴퓨터로 이것저것 찾아보았다. 그리고 배운 사실은, 나처럼 하드에 불낸 인간이 꽤나 많다는 것. 옛날엔 컴퓨터에서 연기난다고 하면 그냥 웃겼는데 이제는 하나도 웃기지 않았다.

원인 파악

그럼 왜 하드가 탔을까? 내가 하드 케이블의 작동 방식은 잘 모르지만, 전원 케이블과 관계 없이 메인보드가 하드디스크와 뭔가 하려고 했던 건 분명하다. 아마 하드를 읽으려고 했거나 그랬는데, 전원이 충분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오히려 전기가 역으로 흘러버렸을 가능성이 있다.

앞으로 할 일은?

그렇다면 이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컴퓨터를 다시 끈 후, 전원케이블까지 제대로 연결해서 부팅해볼까 싶었다. 하지만 곧 별로 현명한 생각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무슨 문제가 생길지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나면 AS 센터에 가서 데이터 복구나 받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인 듯 하다. 하드는 돈으로 살 수 있지만 추억은 돈으로 살 수 없지 않은가. 일단 안의 자료들이 소중했다.

후기

후기라 쓰고보니 웃긴다. 마치 일부러 하드를 태워보고 경험담을 이야기하는 것 같잖아. 뭐, 신선한 경험이었다는 건 확실하다. 신선함의 도를 지나쳐 아주 짜릿짜릿하고 화끈하기도 했지만, 그건 내가 좋아하는 거니 거기까지는 괜찮다.

다행히 정말 중요한 부분에는 큰 문제가 없었고, 아마 데이터도 대부분 복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냥 감이긴 한데, 딱히 안 될 이유가 없으니까.

뒤돌아보면, 연기가 나자마자 바로 전원부터 뽑아야했다. 본체야 뭐, 내가 파워를 싸구려로 쓰는 것도 아니고, 그냥 전원을 내려도 정말정말 운이 더럽지만 않으면 별 문제 없을 터였다. 내가 전원을 뽑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고, 전원을 뽑고도 몇 초 간은 더 전력이 공급되었을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오랬동안 하드가 노출되어 있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나마 흥분을 가라앉히고 정리를 해서 다행히지, 그 상태로 다시 케이블을 연결하고 부팅해보는 만행을 저질렀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별로 알고 싶지 않다.

좋은 경험 했다고 생각하련다. 이런 에피소드 하나쯤 있어도 무방하겠지. 물론 다시는 하고 싶지 않지만…

  1. 아 쪽팔려
  2. 힘주다가 램 부술 뻔 했다 ㅎㄷㄷ
2010/02/08 13:22 2010/02/08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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