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체벌은 무엇을 가르치는가?
간만에 이런 글을 쓴다. 블로그 분위기가 가볍다가 생각 없다가 가끔 심해로 가라앉아버리는 것은, 주인장이 늘 별 생각 없어서 그러니 양해하기 바란다.
체벌은 교육 효과가 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체벌은 교육 효과가 있다. 공부 안 하던 애들도 패면 공부를 하게 되어있고, 맨날 지각하던 애들도 엉덩이를 알록달록하게 만들어주면 부지런히 학교에 뛰어온다. 쌓이고 쌓이면 언젠가 그들도 성실한 사람이 되어 체벌 없이도 바르게 사는 사람이 되겠지.
가끔 자신이 엇나가고 있을 때, 누군가(보통 친구)가 날 잡고 좀 패줬으면 할 때도 있다. 한 대 맞고 나면 정신차리고 뭔가 열심히 노력할 수 있을텐데.
이런 느낌을 받아본 적이 많이들 있을 것이라 본다. 같은 맥락이다. 한 대 맞고나면이라는 말을 잘 살펴보면, 폭력이 행동을 변하게 하는데 효과가 있다는 뜻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게 플라시보 효과1든 아니든.
체벌은 효율적이다
게다가 더욱 더 체벌을 반대하는 사람을 괴롭히는 사실은, 체벌은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효율적이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간단하게 예를 들어보면 이해하기 쉽다. 여기 같은 반 친구를 괴롭히는 아이, A가 있다고 하자. 나이는 중3쯤? 한창 자기가 뭔가 안다고 생각할 나이다.
대화로 선도한다면? 장난이 아니다. 첫번째 난관은, 아예 이 녀석이 대화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대화를 시작해야 교육이든 뭐든 가능할텐데, 기껏해야 각종 질문에 돌아오는 대답은 아, 알겠다고요. 죄송하다니까요.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교육자도 점점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르다가 말실수를 해서 모든 것을 그르치거나, 방치를 선택하게 되기 십상이다. 물론 그래서 교사들은 상담법을 배워야할 필요도 있고, 자신의 인격수양도 해야한다. 하지만 우리도 학창시절을 보냈다. 명백히 알고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교사는 그다지 이상적인 교사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2
교사가 포기하지 않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그런 경우 대체로 아이는 교육자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새겨 들을 이유가 없다고 스스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억할 때까지 반복작업을 해야한다. 대화를 사용한 교육법은 강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시간을 오래 끌기도 힘들다. 따라서 장기간에 걸친 교육이 이루어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체벌을 사용한다면? 이야기가 훨씬 쉬워진다. 도구가 필요하긴 하다. 적당히 고통스러우면서도 큰 부상이 생기지 않는 체벌 도구. 하지만 이거야 과거로부터 내려온 선조들의 지혜(?)가 많으니 원하는 걸로 고르면 되겠다. 자, 도구가 확보되었다. 해야할 일은? 그저 패는 거다. 안 한다고 하면? 또 패는 거다. 중간중간 약간의 말장난으로 기선제압도 해주는 것도 빠뜨리지 말자. 패는 게 귀찮고 팔이 아프면? 운동장을 돌린다. 그냥 돌면 심심하니 토끼뜀을 시키자.
물론 처음에는 A도 바락바락 대들고 왜 때리냐고 항의한다. 그게 아니면 계속 속으로 뭐라고 씨부렁대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체벌의 목적은 꺾는 것이다. 사회를 이탈하려는 의지! 반항의 욕구! 놀고 싶은 마음! 이 모든 것을 꺾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정신력이 독립투사쯤 되지 않는 한 인간은 폭력으로 언젠가는 꺾이고 만다. 결국 반성하지 않더라도 나중에 같은 행위를 반복하려고 할 경우, 무의식중에 공포감이 엄습해온다. 보이지 않는 교육자를 회초리로 몸에 직접 새겨주는 거다. 언제든지 따라다니도록.
좀 더 발전한다면 회초리 중간중간에 쉬는 시간이나 먹을 것, 말솜씨로 당근을 던져주는 고급 기술도 구사할 수 있다. 어쨋든 체벌을 사용한 방법의 장점은 명백하다. 쉽다! A가 다치지 않도록 완급만 조절하면 그냥 무의미한 반복 만으로도 효과를 볼 수 있다. 굳이 응용을 하지 않더라도 모방만으로도 충분히 그럴 듯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대화보다 훨씬 더 결과가 신속하고 확실하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폭력으로 상대방을 제압한다는 것
이제 A는 더 이상 친구를 괴롭히지 않는다. 적어도 들킬 것 같은 곳에서는 그럴 수 없다. 공포를 이용한 방법을 잘 사용했다면 아예 하지 않게 될 가능성도 높다. 자, 여기까지는 바람직하다.
그 뒤로도 멀쩡히 잘 자랐다고 하자. 별 문제 없이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도덕관을 가지고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그 때 반에 어떤 녀석, B가 다른 친구를 괴롭히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자신은 이미 거쳐온 성장과정이고, 그 잘못을 보고도 넘길 수는 없다. 그래서 대화를 시도한다.
"야, 친구를 때리면 쓰냐."
"니가 뭔데? 선생이냐?"
"넌 그렇게 맞으면 좋겠냐?"
"아니 그러니깐 넌 뭐냐고? 너도 맞고 싶냐?"
인내심은 끊어졌다. 그리고 A는 알고 있다. 대화를 하려하지 않는 상대를 올바르게 인도하는 확실한 방법을. 지금이야 싸움을 놓았지만 한 때 잘나갔던 자신이다. 한 주먹에 상대를 때려눕힌다. 힘의 차이를 명백하게 가르쳐준 후, 잘못된 일을 하지 않도록 인도한다. 마치 선생이라도 된 양 뿌듯함을 느끼며 집으로 가벼운 발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잠시 B의 입장으로 되돌아가보자. 1. 난 아직 내 꼬봉을 왜 때리면 안 되는지 스스로 납득하지 못했다. 2. 하지만 더 힘쎈 놈이 나보고 하지 말라니 할 수는 없다. 물론 스스로 잘못을 깨달으면 다행이지만 모두가 그렇진 않다. 깨닫지 못했을 때, 이 두 가지 생각을 가지고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슬프게도 내가 맞은 이유는 단순히 저 녀석이 힘이 더 세기 때문이다.
라는 것이다. 그 결론을 가지고 B는 차후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당연히 자신보다 힘이 약한 아이들을 자기 마음대로 부리거나, 힘을 길러 A를 꺾으려고 하겠지? A를 꺾은 후 더 이상 자신을 막을 벽이 없다면 위기를 극복한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좋은 영웅담으로 여기저기 읊어대고 다닐 것이다.
폭력은 폭력을 가르친다
폭력에 담긴 선의는 별로 상관 없다. 문제는 상대방이 좋은 가르침을 받았든 까먹든 거부했든 간에 한 가지는 확실히 기억한다는 거다. 아, 패면 말을 듣는군?
이건 무서운 사실이다. 똑같은 논리로 운동부에서는 선배가 후배를 패고, 군대에서는 상관이 밑사람을 패며, 조폭에서는 형님이 아우들을 팬다.3
사람은 자기 합리화에 뛰어나다. 필요에 따라 정의를 마구 바꾸는 데 능숙하다. 특히나 평소에도 사람들끼리 의견이 엇갈리는 애매한 문제들은 상황상황마다 주장이 바뀌며 늘 자신의 행동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사용한다. 물론 사람을 때리는
것은 나쁘다. 하지만 난 옳은 것을 가르치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적재적소에서 필요하면 모든 이가 선생님이 되어 체벌을 휘두른다. 학생이 뭐라고 생각하든, 아니 심지어 스스로 학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더라도 뭔 상관인가? 폭력을 반복하면 언젠가 꺾일텐데.
이런 사회는 어디를 봐도 현대와는 거리가 멀다. 민주주의국가의 시민이 가질 생각으로 전혀 적절하지 않다. 우린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 공감하는 부분을 이용하여 사회를 발전시켜야 한다.4 내 생각과 다르다면 꺾어서 옳게 만드는 게 아니라, 모두가 납득할 방법으로 서로를 설득하려고 노력해야한다는 것이다.
체벌은 이제 과거에 놓고 오자
교육자가 힘든 게 차라리 낫다
다시 학교 이야기로 돌아가자. 선생님이 학생을 가르치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경우는 학생이 잘못했다는 게 명백하다. 누가 옳은지 확실한 상황에서 한쪽이 생각을 강요하는 게 뭐가 나쁘다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학생이 납득하지 못한다면? 아까 예시는 서로 납득하지 못한 폭력이 어떤 결과를 부르는지를 말해준다.
그렇다면 서로 납득할 때만 체벌을 하면 될 것 아닌가?
그게 그렇지가 않다. 본능적으로 사람은 고통을 기피한다. 고통에 무릎꿇는 것인지, 옳음을 인정하는 것인지 구분할 방법이 없다. 아니 애초에, 체벌을 하기도 전에 서로 납득하고 있다면 이건 대화가 풀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
물론 대화는 어렵다. 인내심이 필요하다. 대화가 아니라면 감점 같은 방법도 있지만 이것도 처벌 시스템을 치밀하게 만들려면 골치아프기는 매한가지다. 게다가 점수를 포기해버리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이것 또한 감당하기 힘들다. 아까 말했지 않은가? 그래서 체벌이 효과적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체벌을 하면 안 된다. 힘든 건 어쩔 수 없다. 이 사회에는 사람이 너무 많고 따라서 시스템도 복잡하다. 한가지 일을 하면 예전보다 파장도 크고 어디로 튈지 예측도 힘들다. 사람과 접촉이 많아질수록 폭력을 사용할 곳도 많아질 것이고, 스스로 잘못을 깨닫기도 전에 이미 배운 폭력을 사용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처벌은 아이가 힘들고 대화는 교육자가 힘들다면, 당연히 교육자가 힘든 게 낫다. 이건 그것이 교육자다운 행동이라서라는 이유보다는 다른 이유 때문이다. 교육자는 이미 성인이다. 성인이라도 무조건 옳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름의 도덕관은 있고 어느 정도 깊은 생각도 해보았을 것이다. 골치 아프더라도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은 찾아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아이가 골치아프다면? 그 결과를 어떻게 장담할 것인가?
교육의 중요한 포인트는 아이들이 스스로 잘못을 깨닫는 것이다. 어떤 방법이든 결국 최후에는 그것을 목표로 한다. 다만 폭력은 그 과정에서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을 힘으로 억제할 뿐이라는 차이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대화는 오히려 정공법이 가깝다. 체벌이든 감점이든 다른 처벌은 처벌에 대해 곰씹을 시간을 늘려서 정작 뉘우침에는 늦게 도달하기 쉽다.
민주주의 사회에 더 이상 폭력은 어울리지 않는다
모든 종류의 처벌이 옳은가는 논하고 싶지 않다. 난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체벌은 다르다. 충분히 대치할 수 있다는 소리다. 다른 처벌 방법도 당연히 나름의 부작용이 있겠지만 상대를 폭력으로 굽히는 행위를 가르치는 것보다야 낫다. 교사와 학생 사이, 학생과 학생 사이에 폭력이 존재하지 않는 학교. 꿈 같은 이야기처럼 들릴지 몰라도 이에 거의 근사(近似)한 학교를 난 이미 알고 있다.
과거에 회초리가 많은 사람을 올바른 길로 인도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게 언제까지나 그럴 수 있다는 보증은 아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폭력이란 정말 저질스러운 행위다. 처음에는 가르침으로 시작했을지라도 전달되는 과정에서 충분히 저급해질 수 있다. 올바른 행위가 올바른 결과만을 낳는 것은 아니라는 걸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이제 그만하자. 체벌은 충분히 시대착오적이지 않은가.
덧
난 글을 어렵게 쓰고 싶지 않다. 암호문을 만들어놓고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하면 무식하다고 하는 행위는 정말 같잖다고 생각한다. 물론 기초소양의 범위라는 게 있기는 하지만. 내 글이 읽기 어렵다면 그건 어렵게 쓰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냥 내 능력이 부족한 거다. 더 쉽게 쓰기 위해 늘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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