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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이란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난 나름 잘난 놈들이 서식한다는 집단과 가까운 편이다. 그렇다고 내가 잘났냐하면 그건 좀 아니고 그저 운이 늘 따르는 것 같아 다행일 뿐이다. 잘난 집단의 예를 들자면 과학고를 다녔었고 SKY에(K는 별로 없지만) 친구들이 꽤 있다는 것 정도? 그리고 그런 곳에서 지내다 보면 참 별 꼴을 다 보게 된다.

나름 잘난 놈들 중에는 잘난척 병에 걸린 놈들이 많다. 자신이 어떤 면에서 다른 사람에 비해 우월한지 끊임 없이 말하고 싶어하는 병이다. 이 병의 가장 큰 문제는 평화로운 사회 생활에 지장이 많다는 점이며 그래서 많은 잘난척 바이러스 보균자들은 에이즈 마냥 자신이 보균자라는 것을 숨기고 다닌다.

이 잘난척 바이러스 보균자들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고 마구 증상을 발휘할 때가 있다. 자신보다 잘난 놈들을 만나서 문화적 충격을 받았을 경우, 자신이 집단 내에서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여 무슨 말을 해도 좋은 경우, 마지막으로 자신과 비슷한 등급의 집단에 섞여서 타 집단을 내리까는 경우다. 난 마지막 경우를 참 많이 봤다. 그리고 거기에 내가 끼여있었던 적이 없다고도 말하기 힘들다.

대한민국은 참 바람직하게도 성적으로 줄세우기를 참 좋아하는 나라다. 덕분에 이 집단 우월감의 근거도 성적에서 비롯될 때가 많다. "난 특목고야. 이 병맛 찌질 공고 색히들 ㅋㅋ"이라고 생각하는 과고생은 생각보다 꽤 있다.(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해도 결정적인 순간에 술마시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 정말 많이 봤다.) 다만 그 말을 평소에는 입에 올리지 않을 뿐. 일명 명문대생들도 마찬가지며 그 집단에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그런 투의 말을 듣는 일이 많아진다.

연예인의 학력이 고졸이라고 인터넷에 뜬 경우 :
"뭐야, 저 골빈 년."
지나가다가 오토바이를 몰고 날라리처럼 보이는 사람이 지나간 경우 :
"대가리에 돌도 안 찬 것들이 폼이나 잡고 다니기는."

참 신기한 것은 이건 일부 잘난척 병 환자들만이 내뱉는 대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은 졸업도 안 한 고등학생인 주제에 고졸이라고 골 비었다고 하는 고딩도 봄날 꽃잎마냥 바닥에 깔렸고 인서울했다고 지방대라고 하면 혀부터 끌끌 차대는 대학생도 쓸데 없이 많이 봤다. 대체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이란 말인가.

수능 점수로 인간의 가치를 판단하는 참 재미있는 시대다. 사실 중등교육 과정의 학습 성취도를 능력의 가장 주요한 판단 잣대로 사용하는 것에 큰 문제가 있다고 하기는 힘들다. 모든 학생들을 멘토링하기는 힘든 마당에 가장 보편적이고 삶에 필요한 기초적 지식들을 가르치면서 시험을 치고 그 성적으로 성실도나 잠재력을 파악하는 것은 가장 쉽고도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과 하기 힘든 것은 분명히 다르다.

저 잘난척 병 환자들이 날이 갈수록 극성을 부리는 것은 사람들이 저 평가의 결과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다음 세대에게도 집착하도록 끊임 없이 세뇌교육을 한 성과다. 자신이 저 평가에 희생당해 평생 집착하고 살았다면 다음 세대에게는 집착하지 않는 법을 가르칠 수도 있다. 하지만 대체 왜 이 나라의 똑똑하신 국민들은 하나 같이 다음 세대가 평가를 초월하기만을 바란단 말인가. 감히 내가 어떻게 이 거대한 현실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 싸우겠나고? 그럼 대체 자식들은 뭔 재주로 당신보다 더 뛰어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 다른 사람을 제치고 트로피를 거머쥐라고 하는가? 나와 다른 사람 중 하나가 고통을 거머쥐어야 한다면 그 고통을 양보하라고 윤리 시간에 배웠는가?

평가의 결과가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하나 같이 평가를 숭배하니 다음 세대도 그 종교를 그저 따를 뿐이요, 이 나라의 비정상적인 4년제 대학 숫자도 그저 유지될 뿐이요, 학생을 봉으로 아는 대학들도 등록금을 열심히 올릴 뿐이로다.

상식적으로 좀 생각해보자. 예전에는 대학만 나오면 어떻게 되었다고 불만이 많다. 청년 실업이니 뭐니 참 말도 많다. 사실 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이제 우리나라는 수평적 팽창 시기가 끝났으니 당연히 일자리가 줄어든다. 하지만 그게 문제의 다가 아니다. 대학을 졸업하면 돈을 잘 버는 것 같으니까 어떻게든 대학에나 쑤셔 박아 놓은 당신 자식들이 어떻게든 들어갔으니 인생 끝이라고 막장 테크 탄 결과가 아닌가.

세상에 대체 진정 잘난 놈이 어디 있는가. 서울대간 녀석은 우월하고 배제대간 녀석은 우울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한다. 바로 그런 생각이 인디언의 몸에 금속탄을 박았다. 물론 나도 잘 안다. 사람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그 사람들을 판단해야할 객관적 자료는 분명히 필요하고 학벌이나 성적이 꽤나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 정도는. 하지만 당신이 태어날 때 용이 떨어져 어머니의 뱃속으로 들어가고 아무도 없는 마당에서 풍악이 들리지 않았더라도 당신의 탄생의 가치는 분명히 있다. 인디언이 장갑차를 개발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인디언의 문화는 충분히 존경할 것이었다.

사람을 성적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 더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것은 삶의 경험으로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도 제대로 동감하지 못하는 왜곡된 삶의 가치를 가보처럼 전수해도 얻어지는 것은 없다. 아무리 지금 세상이 처절한 경쟁 사회라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는 법이다. 사람을 대할 때 일단 존중으로 대하고 양놈들 말마따나 표지만 보고 책의 가치를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성적이 낮으면 패배자로 분류하는 그들도 빈곤으로 배를 부여잡고 아사해가는 제3세계의 아이들을 보며 슬픔을 느끼는지 묻고 싶다. 성적이 나쁜 사람이 있어야 좋은 사람도 있는 법이다. 잘난 병이 아니라 잘난척 병인 이유는 그 환자들이 실제로는 잘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패배를 모르는 승리자는 잘난척 병에 걸리기는 커녕 사실 승리에 별로 관심도 없다. 자신보다 잘난 사람이 있으니까 상대적으로 못한 사람들이나 까야겠다는 논리는 매우 불합리하며 이기적이다.

자신이 나름 잘난 놈에 속해있다면 그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대와 집단에 태어난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그 운을 얻지 못한 사람들을 무시하지 말아야겠다. 그 처절해보이는 인생의 패배자들도 다른 세상에 태어났으면 당신 위에 있었을 지도 모른다. 사람을 판단할 기준은 많다. 판단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그 기준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운 좋게 이 세상에 태어나 누릴 수 있는 것을 누리는 것은 무어라 하지 않지만 잘난척 병은 걸리지 말자. 잘난척 병은 여름이 아니라 사계절 내내 개도 안 걸린다.

또한 성적 체계의 낙오자라고 인생을 비관하고 다음 세대에 무리한 요구를 떠넘기지 말아야겠다. 자신이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웃은 적이 있다면 분명하게 잊지 말아야 겠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이게 당신이 물려주어야 할 새로운 가보가 아닐까.

2009/05/14 20:59 2009/05/14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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